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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33년전 백담사로 떠나던 그날 5·18 사과 없이 세상 떠났다
전두환, 33년전 백담사로 떠나던 그날 5·18 사과 없이 세상 떠났다
  • 최민기 기자
  • 승인 2021.11.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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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90세를 일기로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11·12대 대통령을 지낸 고인은 12·12 군사 쿠데타 동지 관계로 나중엔 직선제로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뒤 2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날은 33년 전인 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에서 재임 기간 중의 실책과 잘못 및 비리에 대해 사죄하고 백담사로 향했던 날과 같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 8월 혈액암을 진단받는 등 지병을 앓아온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40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자택 내에서 쓰러져 오전 8시 55분께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고, 경찰은 오전 9시 12분께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에 따르면 고인은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자택엔 부인 이순자 여사뿐이어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생전의 전두환 전 대통령 모습 [사진=연합뉴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 여사와 아들 전재국·전재용·전대만 씨, 딸 전효선 씨가 있다.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 전 대통령은 1955년 육사(11기)를 졸업한 후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 전 대통령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사건 수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해 12월 12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과 함께 정권 찬탈을 위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군사 반란을 통해 정국을 장악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바람을 억제하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다. 그해 9월 1일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독재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대통령선거인단 간접선거로 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가 거세지자 1987년 4·13 호헌조치를 통해 개헌 요구를 거부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호헌 철폐 시위가 이어져 6월 민주항쟁이 들불처럼 확산하자 전 전 대통령은 항복했고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직선제 개헌을 명시한 6·29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퇴임 후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자 1988년 재산을 헌납 선언을 하고 백담사에서 지냈다. 하지만 재산 헌납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씨는 1996년 내란, 뇌물 수수, 내란목적살인죄 등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추징금 2205억원이 선고됐으며 수감 2년 만인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입구에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광주시민들에 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후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오는 29일 결심 공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지난 7월 5일에는 항소심 재판에 불참했고 한 달 뒤 8월 9일 광주지방법원 법정에 출석한 것이 사실상 공개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전씨는 끝내 5·18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대한 사과없이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족을 통해 5·18 사태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힌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추징금 2205억원에 대한 완납도 이행되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5일간의 국가장으로 치러졌지만 전 전대통령은 반대 여론이 거세 국가장으로 치러질 가능성은 낮다.

고인의 유언은 2017년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민 전 비서관은 고인의 자택 앞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같이 밝히면서 "전방고지라는 게 장지인데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장지가 결정될 때까지는 일단은 화장한 후에 연희동에 그냥 모시다가 결정되면 그리로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