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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태극 올림피언을 보는 새 관전법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2.02.0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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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로 종합 13위 예상(AP통신)

△ 금메달 2개, 은 3개, 동 2개로 종합 16위 예상(그레이스노트)

미국의 글로벌 통신사와 스포츠데이터기업이 4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개막하는 ‘눈과 얼음의 축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팀 코리아' 한국선수단이 거둘 것으로 각각 예상하는 메달 수와 종합성적표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의 목표는 이보다 낮은 수준이다. 어림잡아 금메달 1~2개로 종합 15위 내에 들겠다는 것이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금 2, 은 1, 동 1, 종합 10위)에서 첫 금맥을 캔 이후 한국 겨울종목의 올림피아드 도전사에 이렇게 소박한 목표가 세워진 적이 또 있을까.

한국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거둔 종합 14위(금 2, 은 2)가 역대로 가장 낮은 성적이었고,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선 최고 종합 5위(금 6, 은 6, 동 2)까지 도약한 적이 있다. 물론 금메달 2개에 그친 대회는 알베르빌, 솔트레이크대회뿐이었다.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앞줄 왼쪽부터)과 최민정이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공식 훈련을 하고 있다. 이들은 5일 신설 종목 쇼트트랙 혼성 계주에서 베이징 올림픽 첫 메달에 도전한다. [사진=연합뉴스]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앞줄 왼쪽부터)과 최민정이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공식 훈련을 하고 있다. 이들은 5일 신설 종목 쇼트트랙 혼성 계주에서 베이징 올림픽 첫 메달에 도전한다. [사진=연합뉴스]

더욱이 4년 전 역대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최다 17개 메달(금 5, 은 8, 동 4)을 수확하며 종합 7위 성적을 거둔 평창의 화려한 영광과 견줘보면 초라할 법한 어림 목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에서 방역 빗장으로 혼란스러웠던 훈련 환경과 어렵게 싸우며 베이징의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땀 흘려온 국가대표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눈높이를 대폭 낮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지난달 ‘스노보드 여제’ 클로이 김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모델로 등장해 지구촌의 시선을 끌었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베이징 설원에서 하프파이프 2연패가 유력하게 점쳐지는 가운데 “평창올림픽에 다녀온 직후 금메달을 부모님 댁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나를 짓누르는 부담감과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충격 고백을 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이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수확한 31개 금메달 중 77%(24개)를 도맡은 금밭 쇼트트랙과 일부 세계 정상권 종목에서 ‘타도 한국’을 외치는 도전자들에 맞서 수성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실로 크다. 종합 스포츠무대에서 집념과 투혼으로 목표로 내건 성적을 쟁취해내는 ‘태극전사’ 애칭에 가려진 한국 올림피언들의 중압감을 덜어주는 차원에서라도 가이드라인을 낮출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상 악재에다 2관왕에 올랐던 평창 대회에서 대표팀 선배의 고의충돌 의혹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충격까지 받았던 여자 쇼트트랙 에이스 최민정은 지난달 5일 올림픽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선수단 목표에 대해 "대한체육회에서 우리가 어렵게 준비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렇게 목표를 설정해준 것 같다"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면 기쁨이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도쿄 하계올림픽부터 무관중 또는 제한된 관중 앞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후회 없이 펼치는 자신과의 싸움은 팬데믹(글로벌 대유행) 시대에 메가스포츠 축제에 나선 올림피언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자세일 터다.

메달 색깔이나, 포디엄에 오르고 못 오르고를 떠나 은반, 트랙, 설원에서 쏟는 땀의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고 팬데믹이 불러온 혼돈의 경기외적 변수를 이겨낸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미 한국선수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연기돼 지난해 여름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성적지상주의의 굴레를 본격적으로 벗기 시작했고, 국내 스포츠팬들로부터도 많은 공감을 불러왔다. 도쿄 대회에서 역대 최소 메달(금 6, 은 4, 동 10)과 최저 성적(종합 16위)까지 떨어졌음에도 올림픽 성적을 국격과 동일시하던 과거와는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다.

다이빙의 우하람, 육상 높이뛰기의 우상혁, 체조 마루운동의 류성현 등이 거둔 아름다운 4위, ‘졌잘싸’의 갈채를 불러온 여자배구팀의 빛나는 4강, 그리고 두 자릿 수 순위로 밀려났지만 자신의 종목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많은 한국 선수들의 도전은 한국 스포츠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더이상 ‘은메달에 그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거나 ‘메달을 못 따 미안하다’고 울먹이는 모습 대신 올림피아드에서 승부를 즐기며 한 단계 도약했다는 성취감과 주눅 들지 않고 내일을 위한 실패론의 가치를 새기는 당당한 자세는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렇게 올림픽 관전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대미문의 감염병과 힘겹게 싸우는 국민들에게 태극기 게양이나 메달 획득만이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선수들도 팬데믹과 맞서 어려운 여정을 이어왔기에 도전 그 자체를 높게 평가하고 공감하는 성숙한 스포츠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가 다져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한국 썰매 대표팀 선수들이 각오를 새겨넣은 태극기. [사진=대표팀 관계자 제공/연합뉴스]
한국 썰매 대표팀 선수들이 각오를 새겨넣은 태극기. [사진=대표팀 관계자 제공/연합뉴스]

동계스포츠의 경우 4년 전 평창에서 여러 종목에서 고르게 끌어올린 경쟁력을 확인한 것도 베이징에서 중압감 떨친 도전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선수층이 두꺼운 쇼트트랙이나 특정 스타에 의존하는 일부 종목의 선전에만 의존하지 않게 됐다. 쇼트트랙 등 빙상 종목의 스타들이 지나친 기대에 부담을 가질 수 있었지만 삼수 끝에 성공한 동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외국인 지도자 투입, 해외훈련 강화, 외인 선수 귀화, 팀 확대 등 당국의 정책적인 지원 속에 급속히 경쟁력을 끌어올린 컬링, 썰매, 설상 종목에서 잇따라 메달을 수확하면서 전체적으로 자신감의 수위가 높아졌던 것이다.

입상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 겨울스포츠의 경쟁력을 확인시켜줄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에 비록 이번 베이징 올림피아드에서 메달권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선수들의 선전으로 저변을 넓혀가는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있는 성과가 될 수 있다. 오래전부터 많은 나라들이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밟아온 그 경로이다.

이제 7개 종목에서 109개 금메달을 놓고 91개국 2900여명의 올림피언들이 17일 열전에 들어가는 가운데 평창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한국 썰매 대표팀이 베이징올림픽 현장에 입성한 뒤 태극기에 선전을 다짐하는 메시지를 새겨 넣었다. 그중 루지 더블에 출전하는 조정명이 써넣은 ‘재밌게 행복하게 안 되는 건 없다’는 자기다짐이 유독 눈에 띈다. 태극전사의 엄숙하고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 태극 올림피언의 즐거운 도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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