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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상징은 옛말 “비둘기에게 모이 주지 마세요!”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6.08 10:54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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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여지훈 기자] “당신 신고하면 과태료 먹어!”

“신고해봐요! 과태료는 무슨. 뭘 안다고 큰 소리야?!”

동네 어귀를 걷던 중 두 중년이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모습이 목격됐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구경거리 중 하나로 누가 싸움 구경을 꼽았던가.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한낮 대로변에서 대거리하는 사연이 궁금하긴 했다. 거기에 직업병도 한몫해 슬그머니 중년들 쪽으로 다가가던 중, 새로이 시야에 들어온 장면이 사뭇 놀라웠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옆으로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쌀알을 쪼아먹고 있던 것.

단번에 무슨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오가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예상대로 비둘기 모이가 분란의 씨앗이었다. 한 사람은 비둘기에게 모이를 준 쪽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모이를 보고 몰려든 비둘기 떼에 소스라치며 상대를 맹렬히 비난하는 중이었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두 사람 모두 근처 주민이란 점이었다. 들어보니 비둘기 모이를 준 게 한두 번 있었던 일은 아닌 듯 싶었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로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여지훈 기자]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로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여지훈 기자]

문득 궁금해졌다. 옳고 그름은 잠시 제쳐두고라도, 과연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게 현행법상 불법인 걸까? 또 이런 행위를 신고하면 정말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일까? 평소엔 무심코 넘겼던 일들을 짚고자 곧바로 이런저런 정보를 취합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며, 과태료도 부과되지 않는다.

현행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 서식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 분변이나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 훼손이나 건물 부식 등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생활에 피해를 주는 집비둘기의 경우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이런 유해야생동물에는 전주 등 전력 시설에 피해를 주는 까치, 비행장 주변에 출현해 항공기나 특수건조물, 군 작전에 지장을 주는 조수류, 일부 지역에서 서식 밀도가 너무 높아 농림수산업에 피해를 주는 조수류, 장기간에 걸쳐 무리를 지어 농작물이나 과수에 피해를 주는 참새와 까마귀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고 이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까지 불법인 것은 아니다. 환경부에 문의한 결과, 이와 관련된 제재 조항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전국 집비둘기 개체 수는 약 126만 마리로 집계됐다”면서 “최근 5년간 집비둘기와 관련된 민원은 매해 2400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민원 사례에 대한 질문에는 “대부분의 민원이 주택가와 공원, 교량을 중심으로 발생했으며, 그 내용 역시 분변, 털 날림, 악취 등에 의한 피해 호소가 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비둘기를 포함해 유해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걸 전제로 한다”면서 “따라서 인위적으로 모이를 줘서 이들 야생동물을 특정 장소에 모이게 하는 행위는 지양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년 전 서울시에서는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률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다 당시 동물보호단체 등의 반대로 과태료 규정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현행법상 비둘기에게 모이를 준다고 해서 과태료가 부과되지는 않는다.

다만 유해야생동물에 해당하는 집비둘기로 인한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심화될 경우 비둘기를 포획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누구나 가능한 것이 아니며, 여러 조건이 따라붙는다.

현행법상 일부 지역에서 서식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 분변이나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 훼손이나 건물 부식 등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생활에 피해를 주는 집비둘기의 경우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사진=관련 법령 캡처]
현행법상 일부 지역에서 서식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 분변이나 털 날림 등으로 문화재 훼손이나 건물 부식 등 재산상 피해를 주거나, 생활에 피해를 주는 집비둘기의 경우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있다. [사진=관련 법령 캡처]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우선 유해야생동물을 포획하려는 자는 포획 허가 신청서를 제출해 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포획 허가 신청서를 접수한 지자체장은 유해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등의 피해 상황, 유해야생동물의 종류 및 수 등을 조사한 뒤 이를 허가해 줘야 한다. 이는 과도한 포획으로 생태계가 교란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포획하려는 자는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포획도구로서 환경부 장관이 고시하는 도구를 이용해야 한다. 또 포획 즉시 유해야생동물 확인 표지도 부착해야 하며, 포획 후 5일 이내로 포획일시, 야생동물명, 수량과 포획장소 등의 결과를 적어 지자체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처럼 절차상의 번거로움에 더해, 비둘기의 경우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 포획과 달리 총기류가 거의 쓰이지 않다 보니 실제 포획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비둘기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시기를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로 보고 있다. 당시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시와 대한체육회가 일본에서 흰 비둘기 100쌍을 수입해 개체 수를 늘리고 야외비상 훈련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올림픽 당시 날려 보낸 비둘기 수는 약 2400마리로 추정된다.

이후로 국내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비둘기를 수입해서 날리는 관행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더구나 행사를 주최한 기관이나 단체는 비둘기를 날린 후 대부분 사후관리를 하지 않고 방치했으며, 결국 그렇게 퍼진 비둘기들이 번식하며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증가한 비둘기는 주택가, 도로, 공원, 교량, 항만 곡물집하장, 문화재 등을 가리지 않고 둥지를 틀거나, 배설물과 깃털을 뿌려 전염병 위험과 비위생적 환경을 악화하고 있다. 또 곡물 시장이나 양곡 하치장 등에 몰려 막대한 양의 곡물을 축내거나, 도로 위 비둘기를 피하는 차량 사이에서 대형 사고 위험을 촉발하기도 한다. 문화재에 배설물을 뿌려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도 골칫거리 중 하나다.

이러한 집비둘기 관리를 위해 환경부가 각 지자체에 지침으로 내린 방안 중 최우선으로 꼽은 것이 바로 먹이 제공 행위의 근절이다. 각 지자체는 이러한 지침에 따라 현수막을 붙이는 등 관련 홍보 및 계도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환경부는 차선책으로 포획, 화학 불임제 사용, 버드스파이크나 버드와이어 등의 설치, 조류기피제 사용 등을 제시하고 있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로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여지훈 기자]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로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여지훈 기자]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다른 나라도 비둘기 문제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까?

다른 국가들 역시 집비둘기 관리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가 2010년 발표한 ‘유해 집비둘기 관리업무 처리지침’에 따르면, 당시 영국은 집비둘기에게 먹이를 제공하거나 먹이 판매행위를 하는 경우 50파운드(8만원) 상당의 벌금을 부과했으며, 미국과 프랑스도 먹이 제공자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있었다. 스위스, 이탈리아, 호주도 비둘기에게 먹이 주는 행위를 금지했고, 몇몇 국가에서는 비둘기의 번식 방지를 위해 비둘기집 알을 모조알로 교체하거나, 불임약 사용, 포획 후 불임시술 등을 하기도 했다.

관할 지자체 담당자는 “유해조수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비둘기 전부가 유해동물로 규정돼 퇴치돼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라면서도 “주택가에서 집단으로 사는 집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경우,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비둘기까지 더해져 개체 수가 늘게 되고, 분변이나 털 날림 등이 심해진 탓에 주민들로부터 많은 민원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고자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말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홍보 및 계도를 하고 있다”면서도 “현행법상 과태료나 법적인 제재를 가할 근거가 없으므로 찾아가 설득하는 위주로만 활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평화의 상징에서 어느새 유해조수로 전락해버린 도심 속 집비둘기. 한때 영화 속 낭만으로까지 여겨졌던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행위는, 근처 주민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면서 더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앞서 환경부 관계자의 말대로 야생동물이라면 야생에서 자생적으로 살게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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