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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전쟁 전, 이미 위기는 오고 있었다…지구촌 80명 중 1명은 난민 (中)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8.0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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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여겨볼 사실은 우크라이나와 같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발발한 전쟁은 인도주의적 대응에 더해 서구 국가를 중심으로 신속한 정치적 지원까지 불러와 수많은 실향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는 대규모 기아를 야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서구의 정치인이나 언론의 관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오랜 기간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일례로 현재 8년간 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의 기아 인구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계속되는 인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1740만명이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고, 이 수는 연말 1900만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럼에도 이 지역은 지정학적 중요성이 낮다는 이유로 서구 국가들의 관심과 지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예멘, 남수단 등 지정학적인 중요성이 떨어지는 국가들은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사진은 남수단에서 열악한 식수위생 환경. [사진=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예멘, 남수단 등 지정학적인 중요성이 떨어지는 국가들은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사진은 남수단에서 열악한 식수위생 환경. [사진=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지난 6월, 미국을 포함한 G7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세계적인 식량 부족에 대응코자 올해 45억달러(5조8700억원)를 들여 전 세계 식량 안보를 확보하겠다고 공표했다. 당시 G7 정상들은 성명을 통해 해당 자금이 식량 위기에 빠진 전 세계 3억2300만명의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에 요청된 인도주의적 지원 금액만 총 376억달러로, 앞서 세계 각국이 약속한 금액의 무려 8배가 넘는다. 더구나 올해 예상되는 인도주의적 지원 요청금액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91억달러 증가한 467억달러로 추산되는데, 지난 6월 말 기준 이 중 오직 26%인 121억달러만이 조달됐다.

해가 갈수록 인도주의적 지원 요청금액은 커지는 반면, 요청금액 대비 실제 조달된 금액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 코로나19 등에 대응하기 위해 가뜩이나 각국 정부의 재정적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대내외적 위기까지 겹치자 인도주의적 지원에 쏟을 여력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그럼에도 부유한 국가들이 이러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색한 것은 향후 더 큰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비용을 촉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높은 식량 가격과 식량 불안이 많은 난민을 발생시킬 경우, 결국 이들 난민이 부유한 국가로 대거 피란하는 사태로 이어지고, 이는 장차 부유한 국가 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국민 다수가 오히려 비만을 걱정해야 할 만큼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지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본인과 가족이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식량난을 겪는 지역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이란, 자신이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피란 생활이 정말로 사람들을 식량난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로서는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나는 선택 외에는 당장 직면한 고통을 벗어날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집을 버리고 떠난 실향민들을 돕는 것은 한곳에 정착한 이들을 지원하는 것보다 훨씬 큰 비용과 노력이 소요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실향민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인도주의적 지원 요청금액은 커지는 반면, 요청금액 대비 실제 조달된 금액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 요청금 중 조달된 비율(남색)과 조달되지 않은 비율(노란색). [사진=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 제공]
해가 갈수록 인도주의적 지원 요청금액은 커지는 반면, 요청금액 대비 실제 조달된 금액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 요청금 중 조달된 비율(남색)과 조달되지 않은 비율(노란색). [사진=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 제공]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한 ‘2021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폭력, 박해, 인권침해, 심각한 공적질서 붕괴 등으로 발생한 전 세계 난민 수는 지난해 말 기준 8930만명으로, 2012년 4270만명에서 2배 넘게 증가한 동시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올해 2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을 포함하지 않았다. 만약 이들까지 포함할 경우 지난 5월 20일 기준 14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추가될 것으로 추정됐다. 다시 말해 전 세계 난민 수가 이미 1억명을 돌파했다는 얘기다.

“전 세계 인구 80명 중 1명이 난민이다.”

이 막대한 수의 난민을 방치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우선 식량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이 충족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안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2008~2012년 세계를 덮친 식량 위기 동안 전 세계 50여개국이 정치 불안이나 내전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튀니지, 마다가스카르, 알제리, 리비아, 요르단, 수단, 이집트, 시리아, 예멘 등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지역에서 연쇄적으로 시위 또는 내전이 일어났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붕괴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기도 했다.

물론 문제는 이들 국가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당시 극심한 정치·사회적 불안이 초래한 분쟁과 내전을 피해 도망친 난민들의 수가 급증했고, 이들 난민의 물결이 결국 유럽 국가들로 이어지면서 유럽은 감당되지 않는 이주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주 위기는 2015년 절정을 이뤘는데, 그리스, 튀르키예, 이탈리아 등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가는 통로 격에 있는 국가들에서는 난민의 진입을 막는 각국 치안 병력과 난민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난민을 수용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이들 난민으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 인종, 보건, 종교적 문제가 하루가 멀다고 터졌다. 결과적으로 유럽 각지에서는 민족주의적이고 이민자를 적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으며, 이는 기존 중도 또는 좌파적이었던 유럽 국가들에서 정치와 사회적 분위기가 우경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식량 위기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식량 가격을 추가로 상승시킨 것은 맞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세계 식량 가격은 빠르게 치솟고 있었다는 점이다. FAO에 따르면, 세계 식량 가격은 지난해 말 벌써 2008~2012년 식량 위기 당시의 가격 수준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비록 전쟁이 벌어진 2월 이후로 밀, 옥수수, 해바라기유, 비료 등의 가격 상승으로 세계 식량 가격이 무섭도록 솟구쳤지만, 전쟁이 식량 가격 상승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차질과 이상기후 발생에 따른 곡물 주산지에서의 수급 악화가 2020년 하반기부터 곡물 가격을 상승세로 이끌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차질과 이상기후 발생에 따른 곡물 주산지에서의 수급 악화로 세계 식량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훨씬 이전인 2020년 하반기부터 이미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사진=식량농업기구 제공]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차질과 이상기후 발생에 따른 곡물 주산지에서의 수급 악화로 세계 식량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훨씬 이전인 2020년 하반기부터 이미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사진=식량농업기구 제공]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지난 3월 발표한 ‘우크라이나 사태의 국제곡물 시장 영향 분석’에 따르면, 세계 곡물 교역량에서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옥수수 14%, 밀 9%, 보리 10%, 해바라기유 43%이며, 러시아의 점유율은 밀 20%, 보리 14%, 해바라기유 20%다.

이런 와중에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곡물 주산지에 대한 접근성 제한, 비료 살포 및 곡물 수확 지연, 일부 저장 곡물의 손상, 곡물 수출 항구 폐쇄와 수출을 위한 인프라 훼손, 서구 국가들의 대러시아 금융제재 등을 이유로 두 국가의 곡물 수출량이 상당폭 감소했는데, 사실 그 규모 자체는 전 세계 곡물 공급에서 결코 큰 수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2012년 미국 중서부에서 발생한 가뭄이 세계 곡물 공급 감소에 미친 영향이 훨씬 컸다.

일찍이 한국농공학회가 2013년에 발간한 ‘미국 주요 곡창지대에서의 2012년 가뭄실태 분석’에 따르면, 2012년 당시 미국은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경험했고, 특히 세계 3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미국 중서부 콘벨트 지역에서의 농작물 흉작이 극심한 수준이었다. 당시 전 세계 곡물 수출량의 44%를 담당하고 있던 미국 콘벨트의 가뭄으로 옥수수와 콩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식량 가격에 끼친 영향은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후 변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글로벌 식량 보호주의의 경제적 영향 및 향후 리스크 요인’에서도 국제 식량 가격이 이미 2020년 하반기부터 높은 상승세를 나타내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가격 상승세의 주원인으로는 코로나 방역 조치로 인한 노동 공급 축소, 글로벌 공급망 차질, 이상기후 증가가 꼽혔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지역 식량 수출이 차질을 빚게 됐고, 이는 국제 식량 가격의 추가 상승 압박으로 작용하면서 세계 각국의 수출제한조치 등 글로벌 식량 보호주의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일부 국가의 수출제한조치는 다시 국제 식량 가격 상승을 유발했고 이것이 다시 주변국의 제한조치를 촉발하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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