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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이야기, 쉼표, 그리고 숨결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8.1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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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요즘은 인터넷신문이 너무 많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 말에는 공격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만큼 그들 방어자로서는 업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하소연도 더러 섞여 있다. 그러나 의외로 그들이 인터넷신문과 관련해 가장 심각하게 꼽는 문제점은 단순히 그 수가 많아졌다는 것이 아니다.

기자가 만난 다수의 기업 관계자는 오히려 “인터넷신문의 급증은 정보 개방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고, “기업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이들 인터넷신문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불순한 의도로 사실 확인 없이 쓰는 기사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많은 이들이 불순한 의도로 사실 확인 없이 쓰는 기사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특히 오랜 시간 기업에 몸담으며 시대의 변천을 몸소 겪어온 이들은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종이신문 위주였고 매체도 소수였던지라 기업과 언론의 부적절한 담합이 자주 문제시됐는데, 요즘은 아무리 자본이 많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기업이라도 모든 인터넷신문의 입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결과적으로 기업도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시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변화한 시대적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평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현 인터넷신문의 문제점도 정확히 꼬집었다. 기업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정말 문제는 기업에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일단 보도부터 내보내는 매체”라면서 “상당수의 언론이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목적보다는 애초에 불순한 의도를 갖고 대중의 이목을 끌 만한 자극적인 찌라시(황색언론)를 내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에 만연한 통념과 달리, 기자가 만난 다수의 기업 관계자는 설령 본인이 몸담은 기업이라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그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을 꺼내는 그들의 눈빛과 말투가 참으로 진지했기에, 그들의 말이 기자 앞이라고 으레 하는 포장용 발언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27년간 몸담아온 한 기업 관계자의 말을 옮겨보고자 한다. 그는 오래전 자신의 선배가 해준 말을 기자에게 들려줬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한 번은 그가 선배에게 “만약 언론에서 이런저런 이슈로 우리 쪽에 치고 들어오면 어떡하죠?”라고 물었단다. 그때 그에게 선배가 해준 말이 있는데, 그는 그 말을 1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럼 당연히 최대한 올바르게 알려줘야지. 그걸 왜 네가 나서서 해명하려고 하느냐. 비록 우리가 이 기업에 몸담고는 있지만, 사업부가 잘못한 게 있다면 당연히 그걸 언론에서 올바르게 지적해 주도록 해야만 사업부도 저희가 잘못한 걸 알고 개선해가지 않겠냐. 만약 그러지 않고 같은 기업이라고 무작정 우리가 나서서 해명해 준다면, 사업부는 끝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고, 그건 우리 기업에도, 이 사회에도 결국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다.”

기자보다 20년은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한 기업에서 30년 가까이 일해온 이의 입에서 나온, 아니 그의 입을 빌려 그보다 더 먼저 기업에서 종사했던 이가 들려준 말이었다.

그 이야기에는 공격수와 수비수의 첨예한 대립이 아닌, 함께 세상을 좋게 일궈나가자는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공통의 뜻이 있었고, 그래서였을까, 담담히 내뱉는 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기자는 괜스레 차오르는 먹먹함으로 저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해졌다. 기자라는 명패가 흡사 대단한 감투라도 되는 양, 사실 확인 없이 너무나 쉽게 비난의 글을 쓰는 요즘의 기자들을 보며 과연 눈앞의 노장(老將)은 어떤 기분을 느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현재 기자도 수천 개의 인터넷신문 중 한 곳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기사의 ‘기’자도 모르던 초보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수많은 기사를 써오면서 단 한 번도 사실 확인 없이 기사를 쓴 적은 없었다.

미심쩍은 정보는 기업이나 기관 관계자에게 수차례 확인 작업을 거쳤고, 이해하기 어려운 보고서나 학술적 내용은 원저자에게 직접 연락해 묻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소위 ‘메이저 언론’에서 하나같이 똑같은 목소리를 내더라도 그것을 무작정 수용하는 대신 여러 번 교차 검증을 거쳤으며, 특히 해외 소식의 경우 최대한 원문을 찾아 확인한 뒤에야 기사를 썼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나름대로 공신력 있다고 믿어온 큰 규모의 매체조차 세세한 확인 작업 없이 보도를 내보내거나 창피할 정도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물론 그만큼 기사 한 편을 쓰는 데 소요되는 노력과 시간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수일은 물론, 수주, 심지어 수개월 가까이 취재하고 수정하며 다듬어 쓴 적도 있었고, 그렇게 달을 넘어가는 기사의 경우 시의성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그 깊이와 포괄성, 정확성은 이름 있는 언론조차 쉽사리 따라오지 못할 만큼 차별화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럼에도 혹여 틀렸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인용한 정보 자체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자부심이 자만으로 치달은 적은 없었음에 진정 감사할 따름이다.

동시에 막대한 자본과 인력,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소식을 실시간에 가깝게 전하는 메이저 언론으로서 특화해야 할 부분과, 소규모 인터넷신문으로서 특화해야 할 부분이 엄연히 달라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후자의 경우 그 본질은 속보성 기사를 내보내는 게 아닌, 보다 심층적이고 정밀한 기사를 쓰는 것이라는 나름의 철학도 세울 수 있었다.

빈 포대만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으며, 가득 찬 병을 비워내야만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다는 그 간단하면서도 명백한 진리는 정녕 기자라는 직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빈 포대만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으며, 가득 찬 병을 비워내야만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다는 그 간단하면서도 명백한 진리는 정녕 기자라는 직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진출처=언스플래시]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

현 매체에 몸담은 이후 단 한 번도 이 믿음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 기자들에게도 늘 사실 확인에 대해서만큼은 그 중요성을 입에 닳도록 강조했고,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기사에서 나아가 세상에 좀 더 유의미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그들을 지원해왔다. 고맙게도 몇몇 이들은 이를 빠르게 수용해 이미 저만의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으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장차 그들이 얼마나 더 멋진 기자로 발돋움해 나갈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곤 한다.

글이 써지지 않아 쓰기 시작한 글이다. 그리고 글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 어쩌면 최근 기자가 겪은 정신적 고갈은 또 한 번의 전진을 위해 갖게 된 잠깐의 쉼표 같은 시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빈 포대만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으며, 가득 찬 병을 비워내야만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다는 그 간단하면서도 명백한 진리는 정녕 기자라는 직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요 며칠 그랬듯, 글이 막히는 순간은 앞으로도 숱하게 찾아올 것이다. 기자로서 자기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것만큼 부끄럽고 치명적인 일은 없다. 그러나 설령 그런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다시 새로운 쉼표를 찍으며 재기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오랜 시간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전념하겠다. 사실 ‘좋은 이야기’란 기자가 아닌 독자가 정하는 것이며, 또 시간이 판단할 문제지만, 그럼에도 마음만큼은 그런 각오로 임하겠다.

기자란 직업이 참으로 좋은 것은 설령 기자가 어떤 이유로 부지불식간 일을 그만두거나 세상을 뜨게 될지라도, 책임감 있게 공들여 쓴 기사는 다른 이들에게 두고두고 읽히며 종종 그들 속에 뿌리를 내리고, 언젠가는 나름의 의미를 피워올릴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처 없이 표류하던 이야기는 숨결을 부여받아 생명으로 거듭나고, 언젠가 또 다른 좋은 이야기를 잉태하며, 그 이야기가 다른 좋은 이야기로, 다시 또 다른 좋은 이야기로 이어져 결국엔 좀 더 멋진 세계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건, 상상만으로도 참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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