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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추석과 설날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2.09.15 0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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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래 아버지가 잘 왔다고 그러디?”

머잖아 백세를 눈앞에 둔 장모님이 막내딸인 아내에게 하신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추석, 시댁 산소에 성묘 갔다가 인근 호국원에 안치된 친정아버지 뵙고 가는 길에 전화만 했더니 웃으면서 한마디 하신다. 가벼운 농담처럼 건네신 말씀이지만 우리 부부는 그 말을 듣곤 둔기로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 듯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슴에 담고 곧잘 써먹는다. 왜냐하면 틀린 얘기가 하나도 없는 까닭이다. 우리는 종종 ‘산 자’는 안중에도 없이 ‘죽은 자’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고, 그 전통과 예법, 도리를 앞세워 강요하다 가족끼리 심하게 다퉈 파국을 맞기도 한다.

과연 그것이 정녕 조상이 바라는 바일까. 훗날 내가 조상이 된다고 가정하면 답은 뻔하다.

​지난 10일 남산 뒤로 휘영청 떠오르고 있는 추석 보름달. 지난 100년 중 가장 둥근 보름달이란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일 남산 뒤로 휘영청 떠오르고 있는 추석 보름달. 지난 100년 중 가장 둥근 보름달이란다. [사진=연합뉴스]​

#02. “추석 그만해라. 가족도 그만 엮어라. 힘들면 굳이 성묘 제사 안 해도 된다.”(nsb2****)

지난 5일 추석 음식 준비 문제로 다투다가 남편에게 흉기를 휘두른 6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같은 내용을 전한 여러 기사에 올라온 댓글을 보노라면 21세기 대한민국 추석명절의 우울한 단면과 밑바닥 민심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다.

곰곰 곱씹어볼 만한 글 몇 개를 모아 봤다.

“차례상 제사상이 가정의 불화다. 명절에 모여서 반갑고 즐거운 게 아니라 상 차리느라 허리가 휜다.”(cyul****)

“제사, 명절, 차례 싹 다 없애자. 잘 먹지도 않는 음식 해댄다고 돈 들어, 시간 들어. 집안싸움 나. 왜 이 짓을 해야 하냐. 21세기 우주여행 할 시대에 귀신 밥 차린다고 이 난리.”(dudd****)

“본인 조상 제사 지내는 건 본인이 준비해라, 어디 상놈의 집안이나 남의 딸 부려먹지. 진짜 양반들은 본인이 직접 준비한다. 아주 간소하게.”(hhp7****)

당신의 가족 모두는 이번 추석을 무탈하게 보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03. “시집 온 지 20년 넘었는데 이걸 왜 굳이 지금 얘기 하냐.”(sbak****)

같은 날 한국 유교를 대표하는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위원장 최영갑)가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표준안에는 ‘음식은 여섯 종류면 충분하고 전은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일찍도 말한다”(cher****), “이제 와서”(akss****) 등 누리꾼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설날 추석 등 명절 후 이혼율이 높아지고 집안싸움으로 사건 사고가 증가하며 요즘에는 남녀 성별 갈등까지 격화되는 와중인지라 뒷북이라는 비판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개인적으로는 차례와 제사상에 피자나 치킨 올리는 것도 찬성한다. 후손들이 제사를 모시지 않는 것보다는 간소화해서라도 제사를 모시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영갑 위원장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보니 자칫 제사 자체가 없어질 것같다는 위기감으로 한발 물러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여전히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반응 일색이다.

“차례상 간소해 진다고 단 줄 아냐. 모인 사람들 밥은? 밥상은 누가 차리는데. 모이지를 말아야함.”(sif0****)

“가족들 상의해서 상 안 차리면 명절에 싸울 일이 90%는 사라질 거요. 상은 도대체 누가 먹는다고 차리고~ 상 차리다 싸우기나 하고~ 유교사상 조선시대 지나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상을 차리고 있나?”(koko****)

“조상을 잘 만난 후손들은 명절이 즐겁다. 하지만 조상을 잘못 만난 후손들은 명절 때만 되면 지지고 볶고 싸움질만 함. 그리하여 대부분이 법원으로 간다.”(red6****)

#04. 죽은 자와 산 자가 모두 행복한 명절을 위하여!

대다수 부모는 자식이 결혼해 출가하면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그게 최고 효도라고 말한다. 한해 전 큰 아들을 결혼시키고 나니 필자 또한 십분 공감한다. 우리 조상도 마찬가지이리라. 조상 받드느라 가족 간 불화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결단코 원치 않는다는 얘기다.

한데 우리 주변에는 추석 설날 등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동안 신종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명절증후군이 수면 위로 가라앉았다가 이번에 다시 가족 모임이 재개되면서 더욱 부각되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여성의 결혼율과 출산율이 떨어져 다시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도 결혼 후 여성에게 짐 지우는 가부장제도가 한 몫 한다고 하니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남성도 여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30대 중반을 넘은 미혼 남성 직원은 “기혼자 친구들의 경우 명절이 결혼 전과 후 너무 달라져 무척 힘들다고 토로한다”고 귀띔한다.

사실 제사와 차례는 가부장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근간으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주변 지인 중 자식에게 제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이들이 다수다. 설사 물려준들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하겠느냐며 강한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사실상 거의 끝물이다.

이 때문에 혼란스런 과도기 나름의 전략이 절실하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다는 뜻이다. 추석과 설날 명절,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또는 사위와 며느리 등 가족 구성원 누구 하나라도 ‘힐링’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아 불화와 반목의 씨가 싹튼다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들 또는 딸 부부가 명절만 되면 심하게 다투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힘겨워하는데도 계속 고집 부릴 일인가.

이제라도 과감히 변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명절 만들기는 더 이상 지체 없이, 좌고우면할 것 없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발행인

 

■ 글쓴이는? - ‘명절에 일하지 않는 것들이 ’해라 마라‘ 결정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 댓글을 읽은 순간 뜨끔했다. 무노동 무임금처럼 명절과 관련해 무노동이면 결정권도 없어야 하는데 ‘일하지 않는 것들’이 결정하다 보니 사달이 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2남2녀의 막내인 필자는 추석 당일 형과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눴다. 그나마 흐뭇한 것은 명절 풍경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남녀가 서로 협력해 집안일 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확실한 변화로 다가온다.

■ 후기 - 집안에 장남 또는 맏며느리 역할 놀이를 하겠다고 ‘도리’ 운운하며 형제들에게 강요하는 이들이 있다면 ‘남편에게 흉기 휘두른 60대 여성’과 성균관 ‘차례상 표준안’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어보도록 권하라. 일부 명사들의 관념적인 글보다 몇 백배 피부에 와 닿고 흉금을 울린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게 된다. 그만큼 한국 여성이 처한 현실의 절절하면서도 절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음과 절규를 듣는다면 ‘이제는 변해야 한다’며 몸을 뒤척이지 않을 이가 없지 않을까. 촌철살인의 댓글을 단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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