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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서 성과 확인한 벤투호의 '정공법' 그대로라면?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2.11.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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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후반 11분, 우루과이 마르틴 카세레스에게 발 뒤쪽을 밟혀 쓰러진 손흥민(토트넘). 축구화가 벗겨지고 양말이 찢어질 정도로 심하게 밟혔지만, 안와골절 수술 뒤 착용한 ‘안면보호 마스크’를 매만지더니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풀타임 투혼을 펼쳤다.

#후반 18분, 다르윈 누녜스를 쫓아가다가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종아리를 다친 김민재(나폴리). 넘어질 때 발목까지 살짝 틀어지는 장면이 리플레이에 비치면서 우려를 자아냈지만 피치 치료를 받은 뒤 종아리만 매만지더니 끝내 무실점 수비를 책임졌다.

#후반 추가시간, 하프라인을 돌파해 터치라인 따라 속도를 붙이다 페데리코 발베르데의 격한 태클에 걸려 나뒹굴어 떨어진 이강인(마요르카). 다행히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가해자인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의 도발적인 ‘어퍼컷 세리머니’에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끝까지 조커 역할을 다했다.

이길 수 없다면 져서도 안 된다고 했던가. 그것도 다치지 않고.

아시아 최다 10회 연속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은 한국축구대표팀 ‘벤투호’가 24일 밤(한국시간) 2022년 열전 서전에서 ‘천적’ 우루과이와 승점 1씩 나눠가진 것은 이 축구 격언대로였다.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전반 43분 디에고 고든의 헤더, 후반 44분 발베르데의 중거리슛이 골대를 맞고 나올 때만큼이나 한국으로서는 가슴 철렁한 부상 위기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맞았지만 핵심 자원을 잃지 않고 거둔 소중한 ‘절반의 성과’로 평가된다.

1990, 2010년 두 번씩이나 패했던 우루과이에 첫 승점을 따냈지만 월드컵 무대의 ‘남미 징크스’(2무4패)는 씻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이번 대회에서 막강한 미드필드 진용으로 평가받는 전통의 남미 강호를 상대로 벤투식 ‘빌드업 축구’가 위력을 발휘했다.

카타르 월드컵 초반 사우디아라비아가 우승후보 아르헨티나를 격침하고, 일본이 4년 전 한국이 연출한 ‘카잔의 기적’처럼 전차군단 독일을 격파하는 ‘아시아의 대반란’ 바통을 한국이 이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벤투호 멤버들에게는 압박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이후 빌드업 구축에 방점을 찍고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월드컵 준비를 4년 내내 이끌었던 파울루 벤투 감독은 냉정하게 경기지배와 압박, 그리고 집중력을 주문했다. 수비와 중원의 간격을 촘촘히 유지한 채 라인을 조절하는 '정공법'으로 우루과이를 초반부터 몰아붙였다. 사우디, 일본이 수비에 치중하다 역습으로 이변을 연출했던 변칙의 길과는 달리 철저히 ‘정도’를 밟았다.

한국이 전반에 치열한 중원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경기를 지배하자 우루과이 선수들은 갈수록 쫓기는 표정이 역력했고, 그 여파로 전열을 추스른 후반엔 집중력 약화로 이어졌다. 화려한 공격 1, 2선의 패스워크는 그야말로 난조의 연속이었다. 한국도 슛 타이밍이 늦고 정확도가 떨어져 유효슛을 거두지 못했지만 공수 조직력만큼은 12년 만에 ‘원정 16강’ 도전의 남은 여정을 밝혀주는 대목이다.

AP통신은 이날 무승부를 “이번 월드컵 초반에 나온 또 하나의 놀라운 결과였다"고 평가해 사실상 ‘아시아의 프라이드’를 빛낸 선전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경기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벤투 감독은 ”전반적으로 경기 장악력이 좋았다. 대부분 선수가 대표팀으로 뛰는 것 자체에 큰 자부심이 있다"고 만족해했고, 적장인 디에고 알론소 감독도 "한국이 굉장히 잘해서 공을 빼앗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BBC가 트위터에 게재한 김민재의 '몬스터' 합성물. [사진=BBC트위터 캡처]
BBC가 트위터에 게재한 김민재의 '몬스터' 합성물. [사진=BBC트위터 캡처]

맞춤형 전술이라 해서 ‘선수비 후역습’으로 승부를 거는 약자의 요행수에 치우치다 보면 선수들의 자신감도 그에 따라 진폭이 클 수 있다. 공수 패턴의 정상화를 통해 경기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벤투 감독으로서는 선수들이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지배하는 축구’의 완성도를 높여 강호에 당당히 맞서는 전략을 고수했고, 그 성과를 첫 결전에서 어느 정도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태극전사들도 타이트하면서도 물 흐르 듯 유연하게 돌아가는 패턴 플레이에 익숙해지면서 집중력도 높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상대의 과도한 태클과 몸싸움에도 스스로 부상 위험을 덜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루과이전에서 전력 누수를 피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성과로 볼 수 있다.

안와골절상으로 최소한 4주의 회복기를 거쳐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유에도 수술을 결행해 안면보호대를 착용한 ‘소니’ 손흥민은 캡틴의 무게를 불꽃 투혼으로 다시 견뎌냈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카타르에 입성한 ‘마스크맨’이 아직 완전한 질주와 예각적인 슛 감각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팀의 구심점으로서 풀타임 시동을 건 것은 고무적이다.

4년 전 러시아 입성을 한 달 앞두고 정강이뼈 골절상의 불운으로 월드컵 지각 데뷔전을 치른 ‘괴물 수비수’ 김민재는 유럽무대에서 확인한 탁월한 방어DNA를 보여주며 철통 수비를 이끌어 자신감도 한껏 높아졌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경기 리뷰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매치 오브 더 데이’ 트위터에 "'몬스터' 김민재 앞에 우루과이 공격수들이 전혀 경기를 즐기지 못했다. 김민재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며 그가 ‘괴물’로 변신한 합성사진을 올렸다. 김민재 양 손 밑에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 루이스 수아레스와 리버풀 공격수 누녜스가 오버랩됐다.

벤투 감독의 뚝심만 빛난 것은 아니다. 후반 29분 그간 평가전에서 단 1분도 출전시키지 않아 ‘패싱 논란’을 낳았던 이강인을 비롯해 손준호, 조규성을 한꺼번에 교체 투입해 변화를 꾀했다. 월드컵 본선 경험이 없는 멤버들에게 열린 기회를 통해 성취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선택으로 용병술의 유연성을 더했던 것이다. 고대하던 월드컵 데뷔의 꿈을 이룬 ‘막내형’ 이강인은 슛(1회), 슛 직전 키패스(2회), 프리킥 획득(1회) 등으로 막판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강인은 플래시 인터뷰에서 “감독님께서 수비할 때 너무 많이 처지지는 말라고 하셨다. 또 공을 잡았을 때는 제가 가지고 있는 걸 보여달라고도 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강인 특유의 창의성으로 공격 활로를 넓히겠다는 벤투 감독의 의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벤투 감독도 ”이강인은 빠르게 치고 나가는 패스가 좋다. 훈련장에서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났다“며 16강 진군에 슈퍼서브로 계속 중용할 것을 시사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에 2-3으로 패한 아프리카 강호 가나를 2차전(28일 오후 10시)에서 제압해야 16강 길목에 바짝 다가설 수 있는 벤투호다.

그 도전은 징크스 탈출로도 연결된다. 남미 트라우마를 벗지는 못했지만 가나전은 처지는 아프리카와 승부 기울기를 바로 잡을 기회다. 2006년 1차전에서 토고를 만나 2-1 역전승을 거둔 이후 한국은 2010년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고 4년 뒤엔 알제리에 2-4 참패를 당했다.

한 번도 승리를 맛보지 못한 2차전 징크스를 해소해야 16강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첫 경기 승률을 이번에 40.9%(3승3무5패)로 다소 높였지만 2차전은 무승의 늪에 갇혀있다. 무승부를 반영한 두 번째 경기 승률은 불과 20%(4무6패)다.

역대 본선에서 무승부로 도전을 시작한 적은 두 차례. 1994년 미국 대회에서 강호 스페인과 2-2 무승부를 기록한 뒤 볼리비아와 0-0로 비기고 독일에 2-3으로 져 16강행이 좌절됐고, 손흥민의 월드컵 데뷔무대였던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선 러시아와 1-1로 비기더니 아프리카팀 알제리와 유럽 강호 벨기에에 2-4, 0-1로 연패해 조별리그에서 짐을 싸야 했다.

강호와 언더독을 구분하는 잣대는 균질화된 경기력이다. 상대에 따라 대응력에서 굴곡이 심하고 변칙이 앞선다면 월드컵에서는 결코 강호로 인정받지 못하고, 또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게 입증돼 왔다. 수많은 실패에도 정공법으로 장기적으로 담금질한 전력 업그레이드가 중요한 것이다. '반짝' 선전에 도취해 이후 몰락을 자초했던 실패사례도 많다.

본선 경쟁력을 확인하는 첫 결전에서 빌드업 축구와 정공법으로 벤투 감독이나 태극멤버들이나 자기확신을 키운 것은 분명한 소득이지만 방심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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