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제약업계 오너경영과 전문경영, 그것이 문제로다

  • Editor. 천옥현 기자
  • 입력 2023.03.29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천옥현 기자] 최근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젊은 피들이 약진하고 있다. 창업주 세대에서 2~3세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곳이 많아지는 가운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대에 맞춰 오너경영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시각과 오히려 경영세습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오너경영과 전문경영, 진정 무엇이 답일까. 

[사진=언스플래쉬]
[사진=언스플래쉬]

# 달에서 겔포스를 먹겠다는 오너일가

지난 21일 보령제약 주주총회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김정균 보령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은 주주총회에서 1시간가량을 우주 헬스케어 사업인 ‘케어 인 스페이스’ 프로젝트의 추진 과정과 목적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표는 “엑시엄과 한국에서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합의를 어제 완성했다”며 “조인트 벤처에 대한 세부사항은 양사가 앞으로 한두 달 동안 논의해서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약사 보령은 지난해부터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건설 기업 미국 ‘액시엄 스페이스’에 투자하고, 제1회 CIS 챌린지를 개최하는 등 우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정균 대표가 있다. 김정균 대표는 김승호 보령제약 창업주 손자로 오너 3세다. 

2014년 보령제약 이사 대우로 입사해 전략기획팀, 생산관리팀 등을 거쳐 2017년부터 보령홀딩스 사내이사 겸 경영총괄 임원을 맡았다. 2019년 보령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지난해 1월 보령 사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2019년 NASA의 존슨 우주센터를 방문해 우주공간에서의 헬스케어 관련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발은 거세다. 본업과는 너무 동떨어진 산업에 투자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보령제약의 한 주주는 “달에서 겔포스를 먹으면 속 쓰림이 나아지는지 궁금하다는데 많은 주주들이 우주산업 때문에 속 쓰린 건 모르는 것 같다. 손절을 해야 하나 갑갑하다”고 말했다. 다른 주주는 “투자 기간도 자금조달도 불분명하고 지극히 오너의 개인적이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투자인 것 같다”며 실망스러움을 내비쳤다. 

보령 주가는 지난 27일 장중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증권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지난해 최대 실적을 기록했는데도 우주산업에 대한 투자 활동이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보령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이 전년 대비 21.2% 증가한 760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6.6% 증가했다.

지난달 DB금융투자는 보령의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유지로 하향 조정했다. 이명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레거시 브랜드 인수 전략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했지만, 지난해 본업과 무관한 우주 사업에 투자하면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급감했다”며 “이같은 사업들의 성장 가능성을 입증해 투자 심리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하태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영업실적 대비 주가가 장기하향 조정 중인데, 상승 전환을 위해서는 카나브 특허 만료 극복과 우주헬스케어 사업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 해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상상인증권은 고혈압을 비롯한 전문의약품 비중이 고성장하고 있는 점을 바탕으로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각각 매수와 1만3000원으로 유지했다. 

우주 헬스케어 사업이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칭송받을 만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너 3세의 획기적인 투자가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진 못하는 안타까운 형국이다.

보령이 조인트벤처 설립을 협약한 액시엄스페이스의 세계최초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사진=보령 제공]
보령이 조인트벤처 설립을 협약한 액시엄스페이스의 세계최초 민간 상업용 우주정거장 [사진=보령 제공]

# 20년 만기를 향해 달리는 전문경영인

지난 24일 제일약품은 주주총회를 통해 성석제 사내이사 재선임 건을 승인했다. 이를 통해 성석제 대표는 현직 업계 최장수 CEO 자리를 지켰다. 2004년 제일약품에 취임해 20년간 전문경영인으로 일하고 있는 성 대표 임기는 이로써 3년 더 추가됐다.

사실상 성 대표 연임은 이미 업계에서는 확실하게 여겨졌다. 성 대표는 제일약품이 외형을 확장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성석제 대표 취임 당시인 2005년 2242억원이었던 제일약품의 매출은 지난해 7252억원으로 3배 이상 확대됐다.

제일약품의 매출 비중도 성 대표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현재 제일약품이 판매하는 화이자 의약품은 △리피토 △리리카 △쎄레브렉스 △뉴론틴 △카듀엣 등이다. 이들 제품의 지난해 매출액은 3450억원으로 제일약품 전체 매출 47%가량을 차지한다. 

성석제 대표는 제일약품에 오기 전 한국화이자제약 재정담당 상무와 부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성 대표가 제일약품에 오면서 화이자와의 파트너십이 견고해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상품 매출의존도가 높아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제일약품의 과제로 꼽힌다. 

이에 오너 3세 한상철 사장이 직접 나섰다. 한 사장은 창업주인 고 한원석 회장의 손자이자 한승수 회장의 장남이다. 한 사장은 부사장에 취임한 후 신약 개발에 엑셀을 밟고 있다. 제일약품 신약개발연구소를 설립하고 R&D전문 기업 ‘온코닉테라퓨틱스’를 설립한 바 있다. 한 사장과 성 대표는 투톱 체제를 유지하며 그룹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제일약품 주주총회
지난 24일 개최된 제일약품 주주총회 [사진=제일약품 제공]

# 오너경영과 전문경영 사이에서

제약업계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업력 특성상 분위기가 보수적인 편이다. 전 산업계가 ESG 강화와 전문경영인 체제로 노선을 바꾸는 시기에도 여전히 오너경영 기업이 많은 이유다. 

거기다가 ‘신약 개발’이라는 업계 특수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하고 임상시험까지 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하나의 약품을 제대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도 약 1조~2조원에 이른다. 따라서 이런 리스크를 감당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엔 오너경영 체제가 더 유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오너경영의 단점도 뚜렷하다. 기업을 경영하는 오너가 독단적인 결정을 할 경우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사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여지도 있다. 여기에 명확한 해답은 없다.

이에 대해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제약·바이오산업은 약을 하나 개발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전문경영인의 경우 임기에 한계가 있어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따라서 이런 호흡이 긴 산업에는 오너경영이 더 잘 맞을 수 있다. 과감하게 결단하고 소신 있게 투자하는 게 오너기업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른 제약회사 관계자는 “오너일가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는 뭐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회사나 사업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전문경영인은 단기적인 실적 중심으로 일을 추진하고, 호흡이 긴 중·장기 투자의 경우 오너들이 결정하는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맞춰 가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