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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돌이] 남자의 화장, 그 가깝고도 먼 이야기(下)

  • Editor. 김민주 기자
  • 입력 2022.02.21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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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민주 기자] 남성들이 뷰티 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것은 벌써 오랜 전의 일이다. ‘맨스 뷰티’, ‘그루밍족’ ‘메트로섹슈얼’ 등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남성들과 관련된 용어도 다양해진 만큼 뷰티업계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다.

CJ올리브영에 따르면 남성 소비자의 뷰티 제품 구매액(1분기 기준)이 최근 3년간(2019~2021년) 연평균 28% 증가했다. 기초화장품은 물론 메이크업 쿠션과 립밤 등 남성 전용 색조 화장품까지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남 청담동에서 배우 등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 메이크업아티스트 김모씨(43)는 “업계에 입문했던 2000년대 초 중반 당시 남성들은 최대한 내추럴 한 메이크업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에 비해 요즘은 비연예인 일반 남성들도 평소 여성 못지않게 화사하고 또렷한 화장을 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언플래시]
[사진=언플래시]

남자의 화장, 어제와 오늘

바야흐로 20년 전과 후의 광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2002년 소망화장품(현 코스모코스)이 '꽃을 든 남자' '컬러로션'을 출시하고 20년이 흘렀다. 남성들의 화장은 그만큼 보편적으로 변해 왔을지 자못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뷰티업계의 신제품 출시와 매출 동향으로 그 흐름을 짚어보면 이렇다.

사실 2000년대 초반은 미국에서 생겨난 '그루밍족'이란 신조어와 함께 '화장하는 남자'는 점점 일반적으로 인식됐다. 2005년 론칭한 아모레퍼시픽의 '헤라 옴므'등 남성 전용 화장품 브랜드가 잇따라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2009년 네이처리퍼블릭이 비를 모델로 선정하는 등 화장품 회사들은 브랜드 모델로 남성 연예인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아이오페 맨'은 2014년 남성 전용 에어쿠션을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했다. 에어쿠션은 파운데이션의 일종으로 쿠션 형태의 스펀지를 도장처럼 피부에 찍어 바르는 화장품을 말한다.

[사진=샤넬 (CHANEL) ]
[사진=샤넬 (CHANEL) ]

이 무렵 해외 브랜드의 한국시장 공략도 치열했다. 2011년 SK-II는 남성용 화장품 ‘SK-II MEN’을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선보였다. 에스티로더 그룹의 남성용 화장품 아라미스의 경우 2009년 말부터 한국 시장 매출이 영국·미국·일본을 제치고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세계적 뷰티 브랜드 샤넬은 지난 2019년 1월에 공식 론칭한 샤넬의 첫 남성 메이크업 라인‘보이드샤넬’(BOY de CHANEL)을 국내 시장에 제일 먼저 2018년 9월에 론칭(글로벌 웹은 2018년 11월 론칭) 했다. 그동안 남성 향수나 스킨케어 제품들은 선보였으나 파운데이션과 립밤, 아이브로우 펜슬 등으로 구성된 남자를 위한 색조 제품을 내놓은 건 처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 앰배서더가 아닌 글로벌 캠페인 모델로 배우 이동욱을 기용한 것도 이슈였다. K-뷰티 영향력과 함께 한국남성들의 메이크업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후 남자 색조화장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피부와 눈썹에 공들이던 남성들은 2020년대 들어 아이섀도로 눈과 콧등 윤곽에 음영을 넣어 얼굴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한다. 그해 4월 아모레퍼시픽의 남성 화장품 브랜드 ‘비레디’는 국내 최초로 남성용 아이섀도 ‘무드 업 음영 아이 팔레트’를 선보였다. 해당 제품은 유명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 ‘스완’이 제품 색상 개발에 참여, 남성의 피부 특성과 색상 등을 고려해 개발됐다

그야말로 ‘멘스뷰티’라 불리는 시대다. 화장품 회사들은 남성 전용 화장품, 남성미용 카테고리를 강화하며 기능별로 여성라인 못지않은 세분화된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2010년 8000억 원 수준이던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1900억 원으로 뛰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20년 기준 1조4000억 원을 돌파하며 연평균 3.8%가량의 꾸준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해외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6년부터 연평균 6~8%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2020년 기준 약 2조9276억원에 달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중국 남성 화장품 시장은 지난 2013년 1조7817억원 규모에서 2018년 2조4717억원 규모까지 빠르게 성장해 오는 2023년에는 3조4128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수치를 놓고 보면 화장하는 남자가 전혀 낯설지 않는 시대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뷰티 기업들은 국내를 넘어 중국 남성 화장품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시세이도 로레알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압도적 1위가 없는 무주공산의 신규시장이어서 나름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들의 중국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2020년 7월 자체 브랜드 비디비치에서 '비디비치 옴므 블루 밸런싱 스킨케어'를 출시했다. 타오바오·티몰 남성 스킨케어 카테고리에서 클렌징폼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는 점에 주목해 클렌징폼과 에센스 스킨, 로션 등 기초 화장품을 앞세웠다.

LG생활건강은 '보닌' 등 남성 브랜드를 별도로 론칭 하지는 않았으나, '후', '숨' 등 중국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주요 럭셔리 브랜드에서 남성용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남원화장품원료기업 수이케이는 '지리산어성초추출물-SU-1'이란 품목명으로 중국 화장품원료정보플랫폼에 공식 등록을 마쳤다. 중국에서 국내의 지리적 명칭이 표기된 국내 최초의 원료에 해당한다. 전북 남원의 '지리산'이 표기된 화장품 원료가 거대 중국시장에 지명표기 화장품원료로 수출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남성화장품의 꾸준한 인기와 성장세는 K팝과 K드라마 등 K문화의 글로벌 위상과도 맞물린다고 진단한다. K문화 주역들의 활발한 SNS 활동은 직,간접적인 마케팅 창구로 손색이 없다. BTS, 엑소(EXO), 샤이니 등 글로벌 아이돌의 무대 위 메이크업 모습이나 평소에 쉽게 사용하는 화장품들이 국내외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상당히 해소시켰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SNS를 통해 추천 아이템, 추천 유튜버, 꿀팁 등을 공유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난달 ‘안디바 주식회사’의 남성화장품 브랜드 ‘티에소’는 유럽 남성 화장품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관심이 글로벌 진출의 성공적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주요 화장품 업체 외에 로드샵, 패션 쇼핑몰도 맨즈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잇츠한불의 맨즈 코스메틱 브랜드 ‘퀘파쏘(Que Paso)’는 지난달 5일 신규 론칭했다. 아이템들은 ‘쉐이빙 겸용 폼 클렌저’, ‘매너 스프레이’, ‘남성 청결제’ 등 3종이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지난달 남성 뷰티 PB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 코스메틱 컬렉션’을 선보였다. 20~30대를 겨냥했으며, 클렌징폼, 남성 청결제, 섬유향수 등 스킨케어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장기간 마스크 사용으로 피부 관리에 관심을 갖는 남성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기능성과 전문성을 내세운 제품도 각광받고 있다. 성별을 구분하지 않던 젠더리스(Gender-less) 브랜드가 남성 라인 강화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시장을 견인했던 올인원 제품은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미백과 진정, 각질 관리 등 기능별로 세분화되고 있다.

이는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의 합성어, 1981~2000년대 생) 남성을 중심으로 ‘꾸미는 것도 자기관리의 일종이다’는 인식이 폭넓게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패션과 미용에 대한 투자가 소비 트렌드의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눈썹 문신, 여름철 다리털 제거, 수염 레이저 제모 등 케어부터 파운데이션, 립 틴트, 아이브로우 펜슬, 옅은 색의 아이섀도 등 색조 화장품까지 맨즈 뷰티에 대한 영역도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한국 최초의 젠더리스 색조 브랜드 ‘라카(LAKA)’는 남성도 볼터치와 네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델을 통해 풀어낸 바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젠더 뉴트럴 젠더리스시대, 그러나

젠더뉴트럴(Gender Neutral)이라는 말은 요즘 뷰티시장 트렌드를 반영한 말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하는 젠더마케팅은 이제 옛말이 된 셈이다. 기존의 유니섹스(Unisex)가 남성·여성 제품의 교차 사용으로 남녀 모두를 위한 개념이었다면 젠더뉴트럴은 성별이라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관점을 의미한다. 젠더리스(Genderless) 트렌드는 남녀 구분 없이 개인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제품을 사용하고 스타일링 한다. 미국과 일본에서 시작됐고, 국내에서도 2018년부터 남녀 구분 없이 사용 가능한 스킨케어와 향수 제품들이 다양하게 선보이며 관심을 끌기 시작한 젠더리스화장품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최근에는 남성 전용 화장품뿐만 아니라 성별과 상관없이 사용하는 더모코스메틱(기능성 약국 전용 화장품), 마스크 팩 등 ‘젠더리스’ 구매 트렌드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남성들도 본인의 피부나 필요에 맞게 기능별, 목적별로 구매하려는 성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국내 뷰티시장의 변화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결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살려 좋은 인상을 주는 ‘화장’ 행위가 그 본질적 성격을 넘어 사회적 인식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지난 5일 남자 프로배구 선수 김인혁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그는 지난해 8월경 SNS상에서 악플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화장 한 번도 한 적 없고, 남자 안 좋아하고, 여자 친구도 있었고. (중략) 마스카라 안했고 눈 화장도 안했다. 스킨로션만 발랐는데 이것도 화장이라고 한다면 인정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를 인터뷰한 경험이 있는 동료 기자는 그의 죽음에 망연자실해하며 이렇게 말한다.

“운동할 때, 경기 있을 때 (그가) 화장하고 나오면 게이 아니냐며 악플을 많이 받곤 했다. 게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경기할 때 메이크업 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조금 튀거나 다르면 날을 세우며 반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오지랖이 유망주였던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 같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4일 매일경제는 "남자도 쿠션 두들기고 앰플 발라요~"…여성 제치고 화장품 파는 30대 남성[인터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업계 첫 뷰티 전문 남자 쇼호스트로 유명한 현대홈쇼핑 이찬석 씨를 인터뷰해 흥미를 돋웠다. 하지만 그 기사 댓글에는 "항상 열심히 사는 모습 보기 좋아요. 응원합니다!"(kni0****) "정말 피부에 광이 나던데...부럽기는 하더라~~^^"(asy1****)라는 지지와 성원의 답글도 있지만 "관리하는건 괜찮은데 여성스러운 남자는 거북해"(ksel****), "화장하는 남자들 게이같아서 밥맛이다. 남자 아이돌들도 적당히 화장좀 해라 중독돼서 점점 진해지는 화장 보면 진짜 ‘우웩’이야!"(mt10****) 등 부정적인 댓글도 달렸다.

비난 및 혐오 댓글은 실로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이 아닐 수 없다.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인식은 개방적으로 변했으나, 현실 세계 속 어딘가에선 그것을 여전히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 또한 존재한다. 메이크업 한 예쁜 아이돌 남자는 허용되나 메이크업 한 예쁜 스포츠선수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남성 화장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미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고, 그 도구와 수단으로 활용되는 화장은 스스로를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가는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성별에 차별을 두지 않는, 취향 존중의 열린 시선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 인지도 모르겠다.

 

글쓴이는? - 화장에 입문한 20대 초반 당시만 해도 1시간 이상 공들여 화장에 몰두하다 현재 선베이스 하나 겨우 바르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30대 중반 직장여성이다.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은 엄마와 형제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그것을 추구하며 즐기는 삶을 살았지만, 무엇보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자신감과 높은 자존감이란 것을 최근 들어 좀 더 크게 깨닫는 중이다.

취재후기 – 미국 사회학자 W.F 오그번은 급속히 발전하는 물질문화와 비교적 완만하게 변하는 비물질문화 간 변동 속도 차이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부조화를 문화지체(cultural lag) 현상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트렌드기사 망망대해를 건너던 무렵 예기치 않은 비보를 접하게 돼 안타까웠다. K-뷰티 성장세 속에서 남성 화장품은 날로 늘어나고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K-남성들의 다양한 취향과 개성도 마땅히 존중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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